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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풀리지 않은 그놈의 목소리

by 빅챔피온 2025.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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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호군 유괴 살해 사건: 30여 년간 풀리지 않은 그놈의 목소리

1991년 1월 2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9살 이형호 군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44일간의 악몽은 대한민국 사회에 깊은 상처와 함께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남겼습니다. 영화 '그놈 목소리'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이 사건은, 범인의 치밀함과 당시 수사 기술의 한계가 맞물려 아직도 진범의 얼굴을 알 수 없는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라진 아이, 그리고 치밀한 협박의 시작

이형호 군이 실종된 직후, 가족에게 걸려온 협박 전화는 7천만 원의 몸값을 요구했습니다. 이후 범인은 무려 60여 차례에 걸쳐 공중전화를 통해 이형호 군의 부모를 농락했고, 5차례의 협박 편지를 보냈습니다. 특히 협박 편지를 요구르트 병에 담아 집 문고리에 걸어두거나 특정 장소에 놓아두는 방식은 섬뜩함을 더했습니다.

이형호 군의 시신은 유괴 44일 만인 3월 13일, 한강 고수부지 잠실지구 내 배수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부검 결과, 아이는 유괴 당일 또는 그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범인은 이미 아이를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연기하며 돈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9살 아이를 장기간 감금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인이 발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일찍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 힘이 실립니다.

익숙한 손길의 그림자: 주변 인물에 대한 의심

범인의 행동은 그가 피해자 가족의 일상과 주변 환경에 매우 익숙한 인물임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요구르트 병에 담긴 편지를 집 문고리에 걸어두는 대담한 행동은 아파트 단지 내 지리에 밝고, 가족의 생활 패턴을 파악하고 있어야만 가능했습니다. 또한 범인이 협박 전화에서 이형호 군의 생모와 살고 있는 형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아이의 조부가 자산가이니 돈을 충분히 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 등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밀한 정보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범인이 피해자 가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주변 인물일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국과수 음성 분석과 유력 용의자 '이상재'

사건 수사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단서로 떠오른 것은 범인의 전화 목소리였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음성 성문 분석 결과, 범인의 목소리가 이형호 군의 생모 쪽 친척인 이상재 씨의 성문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상재 씨는 이형호 군의 생모와 이우실 씨(아버지)의 이혼 당시 생모 편에서 대립하여 이우실 씨와 사이가 매우 나빴던 것으로 알려져 개인적인 동기가 의심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하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 돈을 빌리고 다닐 정도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범행 동기로 지목되었습니다. 범인이 개설한 은행 통장 명의가 이상재 씨의 주변 인물들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깨지지 않은 알리바이, 그리고 공범의 가능성

그러나 이상재 씨는 협박 전화가 걸려온 날 서울이 아닌 경주에 있었다는 고속도로 통행 영수증을 제시했고, 이는 당시 수사팀에 의해 확인되면서 그의 알리바이가 성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이상재 씨가 대학에서 전기 통신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가 경주에서 전화를 걸고 서울에 있는 공범이 이를 이형호 군의 집에 연결하여 알리바이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당시의 통신 기술로는 이러한 정교한 조작을 밝혀내기 어려웠고, 공범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도 확보되지 못했습니다.

30여 년의 미스터리, 왜 풀리지 못했나?

이형호군 유괴 살해 사건이 영구 미제로 남은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 당시 수사 기술의 한계: 1990년대 초는 지금처럼 CCTV가 보편화되지 않았고, 설치된 은행 CCTV 역시 저화질의 아날로그 방식이었습니다. DNA 분석 기술도 초기 단계였으며, 음성 성문 분석 역시 지금처럼 정교하지 못해 '일치'라는 결과만으로 강력한 법적 증거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 범인의 치밀함: 공중전화를 이용한 잦은 이동, 짧은 통화, 그리고 알리바이 조작 능력은 당시 수사망을 교묘하게 따돌렸습니다.
  • 공범 입증의 어려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알리바이를 깨고 공범의 존재를 명확히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형호군 유괴 살해 사건은 범인의 잔혹성과 치밀함, 그리고 시대적 수사 기술의 한계가 맞물려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 채 대한민국 사회의 가슴 아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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